- 농축수산물 생산부터 안전관리 - 식약청, 인력·정책경험부족 - 안전체계 장기비전·전략 필요 - 농업·식품 불가분 관계 고려를
국무총리 직속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생기고 농림수산식품부는 ‘식품’을 뺀 농림축산부로 축소 변경될 것이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발표로 농업계 전체가 발칵 뒤집혀졌다.
인수위 발표는 “빈번한 식품안전사고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고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관리를 일원화 하겠다”는 것인데, 잊을만하면 터지는 식품위생 사고로 늘 속상해하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새 정부가 먹을거리 안전공급체계에 특별한 관심을 갖겠다고 하니 분명히 환영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인수위의 세부구상을 보면서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과연 식약처가 식품관련 전체 산업의 안전관리를 일원화해 단독으로 관장하는 것이 가능하며 효율적인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의약품을 비롯해 모든 외식산업, 농축수산품, 가공식품, 건강식품, 음료, 주류 등 수많은 식품산업의 안전관리를 한 부서가 도맡아 관장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존 식약청은 그럴만한 인력과 정책경험을 축적하지도 못했다.
비교적 유통단계가 단순해 시장정보의 수집과 정책 통제가 가능한 의약품이나 일반 제조식품의 경우는 모르겠다. 그러나 농축수산물은 생물이 가공돼 최종 소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므로 식품안전 관리를 위해 초기 생산단계부터 생산이력제와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의 시행이 중요하며 유통과정의 상시 감시를 위한 특별한 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식품안전관리 컨트롤타워라고 지칭하며 힘 있는 부서를 하나 만들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발상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본적 비효율성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수많은 시장정보를 중앙정부가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막강한 식약처를 설치한다 해도 농축수산 분야를 포함한 모든 식품산업의 생산-유통-소비 단계의 수많은 위생안전정보와 시장정보를 원활히 수집하고 통제해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국가의 식품안전체계 구축은 매우 중요하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을 두고 정부의 꾸준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일개 부처에 힘을 더 얹는다 해서 당장에 고질적인 식품위생체계 문제들이 해결되기는 어렵다. 때문에 식약처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식품안전체계를 구축하는 비전과 발전전략을 세우고 각 식품산업 분야에서 식품안전체계를 구현할 수 있는 전체적 원칙과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또한 이런 미래목표가 바람직한 추세 내에서 진행되는지를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국가 식품 안전 체계의 구축과 기존 식약청이 주로 관장해왔던 의약품과 일부 제조식품의 안전관리 업무만으로도 엄청난 하중이 걸리는 일이다.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농축수산물의 식품안전 관리는 농식품부에 그대로 두는 것이 추세에도 맞다. 그래야만 식약처가 ‘실효성 있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지적할 문제는 농림수산식품부를 농림축산부로 변경하면서 ‘식품’을 빼고 식품의 생산-유통-소비 정책을 모두 식약처로 이관한다는 발상이다. 다행히 정부 내에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안이 아니므로 빨리 철회돼야 한다. 식약처의 임무는 식품안전관리로 한정돼야지 식품산업 자체를 관장하는 부처여서는 능력과 격이 맞지 않는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식품안전처 신설에 대한 제안이 있었을 때도 식품산업 정책을 식약청으로 이관하려는 무모한 발상은 없었다. 오늘날 농업과 식품산업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시장규모가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식품산업은 농업의 지속성장을 견인하고 발전동력을 제공한다. 식품산업을 지원·육성함으로써 우리 농산물의 판로를 열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농업과 식품을 연계해 일관적 정책을 펴기 위해서 '농림수산식품부'가 발족했던 것인데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식품산업정책을 식약처로 이관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늘 이런 막무가내식 구조개편 논리를 접해야 하는 것인가?
최근 농식품부 장관이며 생산자단체장들이 인수위의 조직개편 책임자를 만나 설명하고 설득하고 싶어도 만나주지 않아 할 수 없이 국회로 가서 하소연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려다 보면 인수위 정책에 흠집이 날 수도 있으므로 일면 이해가 가지만, 농식품부 조직개편에 대해 농업계의 장관, 농민, 생산자단체, 학계와 교수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성토하고 있는데도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면 중차대한 직무유기이다.
자신들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정면으로 맞서 토론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이라도 관련 장관과 전문가들, 생산자들을 만나 현실을 이해하고 쟁점을 분석하려 노력하며 그러한 고민과 분석을 통해서 식약처와 가칭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합리적 기능 분할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