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잡기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먹을거리 공급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물가안정은 국정의 최대현안이 됐다. 경제부처는 연일 물가안정대책을 내놓다시피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물가안정의 야전사령부가 된 듯하다.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은 수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입을 확대하고, 그것도 모자라 관세를 인하해 수입 먹을거리의 가격을 낮춰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게 핵심이다. 개방화시대에 국내 생산이 부족하면 필요한 만큼을 수입해 수급을 안정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면 부작용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물가불안은 국내외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먼저,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상기후에 따른 국내 농산물 공급부족 현상은 올해 들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도 추웠다. 그러다보니 농산물 생산은 당연히 부진할 수밖에 없다. 지금 농산물 수급이 정상이라면 그 자체가 비정상이다. 여기에다 구제역 사태로 지난 8일 오전 현재 소 15만 마리, 돼지 320만 마리 등 337만 마리에 가까운 우제류 가축이 매몰됐다. 돼지고기와 원유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국제곡물가격은 2008년에 이어 또 다시 급등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2008년에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생성된 신조어인 ‘애그플레이션’ 단어가 최근 들어 다시 등장했다. 국제곡물가격의 고공행진은 식량자급률이 27% 안팎인 우리나라에게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쌀을 제외한 모든 먹을거리의 원가가 올라간다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안정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근시안적으로 과잉 대응한 측면이 없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국내 농축수산업에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먹을거리 물가대책은 할당관세를 적용해 수입가격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에 부응해 대형마트들은 농축수산물 수입에 사운이라도 건 듯하다. 정부보다도 물가안정에 더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현재의 물가대책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농축수산업의 발목을 잡을 게 뻔하다. 국내 물가안정을 위해 수입을 늘리는 것도 모자라 할당관세제도를 활용해 관세 없이 외국 농축수산물이 수입돼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그 결과 국산 농축수산물과 수입 농축수산물 간의 가격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가격경쟁력에서 절대적으로 밀리는 국산 농축수산물의 설자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소비자들이 값싼 수입 농축수산물에 익숙해질 때 국내 농축수산업은 어디로 갈까? 국내 농축수산업이 위축일로를 걸을 때 상황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제곡물가격의 고공행진은 애그플레이션을 통한 물가인상이라는 측면과 함께 식량위기, 식량안보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정부도 안정적 식량 확보에 고민을 하고 있고, 대책마련에 나서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가안정을 위해 할당관세제도까지 동원해 수입 농축수산물을 시장에 값싸게 공급해 국내 농축수산업의 설자리를 위축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적 식량 확보에 나서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물가안정을 수입으로만 풀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국내 농축수산업과 식량안보까지 감안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 시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