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한국행은 8개월이나 늦어졌다.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놨는데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져 출장이 연기돼 버렸다.
마이클 맥(Michael Mack·50) 신젠타(Syngenta) 회장 얘기다. 신젠타는 종자(씨앗)와 작물보호제(농약) 부문을 합쳐 세계 최대 농업기업. 그가 2008년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직접 농촌현장을 둘러보고 농업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아시아 지역 미래 전략안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다.
인터뷰 약속시간인 낮 12시. 서울 종로구 신젠타코리아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구의 남성이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4시간 전에 인천공항에 떨어졌다고 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한국은 진작에 왔어야 했어요. 느긋하게 많이 둘러봐야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있는 나라니까요.”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2011년 11월은 역사적, 아니 지구사적으로 꽤나 의미 있는 달이다. 필리핀에서 70억 명째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화석연료 고갈, 물부족, 식량부족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는데 ‘과연 이 아기에게 희망이 있을까?’ 대지로부터 먹거리를 일궈내는 농산업계의 일원이라면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과연 이 아기에게 희망이 있을까.
“있다. 사실 인도에서 70억 명째 아기가 태어날 거라고 예상했는데(웃음). 매우 낙관적으로 본다. 첫째,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글로벌 어젠다들에 쏟아지는 지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5, 10, 20년 후에는 해결책을 찾는 데 더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칠 거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상 처음으로 10억 명이 늘어난 기간이 그 전보다 길어졌다는 점이다. 인구 증가 속도가 둔화됐다. 이는 곧 부가 증가하고 생활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70억 명째 어린이는 그래서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정말 식량난이 심각한가. 음식물쓰레기가 넘쳐나는데.
“식량부족(food shortage)은 두 단어에 불과하지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수급문제를 얘기해 보면, 매년 곡물의 생산량은 곡물의 수요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식량부족 사태를 겪게 될 거다. 음식물 낭비도 식량난의 주범이다. 생산과정, 유통과정에서 낭비가 너무 많다. 2050년에는 곡물 생산량을 지금의 두 배로 늘려야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지 않나.
“인구증가율이 예전보다 빠르진 않지만 소득이 증가하면서 쌀보다는 육류 소비가 늘고 있다. 그런데 소, 돼지, 닭을 키우는 목축업이야말로 전 세계 곡물 소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옥수수 같은 사료곡물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농가 생산성을 높이고, 낭비를 줄이고,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의 가치를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
맥 회장은 매년 농산업계를 대표해 다보스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도 빌삭 미국 농무부 장관, 팟 베트남 농업부 장관, 혼 샤라드 파와르 인도 농업부 장관, 자크 더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 등과 글로벌 농업 현안을 논의했다. 개인적으로 얘기할 때는 다소 내성적으로 보이지만 ‘연설맨’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대중 앞에선 파워풀한 입심을 자랑한다. 올해는 정부와 민간의 시너지 투자, 친환경 농법 확산, 영세소농들을 위한 시장 확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농업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뭔가.
“영양가가 높고 건강한 농산물을 수확하는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네슬레나 펩시 같은 식품회사들이 바라는 점이다. 신젠타 같은 연구개발 전문회사는 ‘어떻게 농가 생산성을 높일 것인지’가 주 관심사다. 특히 대형 농가뿐 아니라 영세농가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최근 몇 년 새 곡물가격이 크게 뛰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까.
“당분간 농산물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진 않을 것 같다. 2008년 이후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돼 있는 데다 가축 사육두수와 곡물 수요가 일단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전망이다. 말했듯이 기본적인 곡물 수요는 인구증가와 식품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늘어날 거다. 농업인들도 가격 인센티브를 노리고 더 생산에 힘쓸 거다.”
●업종마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한다. 농업분야는 어떤가.
“재미있는 주제다. 생뚱맞을 수 있지만 농산업엔 정치적인 리더십이 요구된다. 식량자급과 국가 간 무역균형을 떠올려보자. 어떤 나라도 모든 작물을 자급자족할 순 없다. 한국만 해도 쌀은 자급하지만 채소는 80% 정도밖엔 조달하지 못한다. 전체적인 식량자급률은 50% 수준이고 사료용 곡물은 수입에 의존한다. 한 나라가 식량을 무역에 의존한다면 무역장벽이 식량 가격을 오르게 하고 이는 민심불안으로 이어진다. 실제 연초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에서는 ‘설탕을 달라’며 국민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은 민주화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식량자급률을 무조건 높여야 한단 소린가.
“그보다는 자급과 무역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게 포인트다. 투자를 하면서 자급기반을 닦는 동시에 무역을 통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수완이 필요하다.”
●한국은 도시화와 함께 농업의 위상이 많이 약해졌다.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인들이 유난히 한국농업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농업의 수준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한국은 헥타르(ha)당 5~5.5t의 쌀을 생산해 낸다. 이 수치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앞선 거다. 한국 농업인들은 신기술 수용의지가 높고 정부도 미래지향적인 정책과 지원을 펼치고 있다. 물론 서비스산업 등 다른 분야가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다. 농업 경지면적도 지난 수십 년간 30만ha가 감소해 지금은 180만ha 정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생산성이다.”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분야가 있다면.
“음, 정부의 규제가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 연구기관에서 생명과학 등 농업분야 투자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신기술들이 실제로 세상 빛을 보기까지 그 어떤 나라보다 오랜 시일이 걸리고 있다. 물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적인 규제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농업연구 분야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제도적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규제가 유난히 강한가.
“예를 들어 유전자재조합농산물(GMO) 관련 생명공학분야만 보더라도 한국 전체에서 200여 건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허가를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 실제로 한국은 이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연구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 규제 차원으로만 보지 말고 상업화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젠타도 한국의 한 대학에서 개발한 가뭄에 강한 벼 기술을 도입한 적이 있다.”
●여전히 GMO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 없이 단어의 느낌만으로 반대한다는 게 안타깝다. 생명공학기술은 찬성하지 않나. GMO도 그 일환이다. 성공적인 GMO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득이 된다. 비싼 값에 팔리는 유기농 작물이 더 안전하거나 환경친화적이라는 근거도 없다. 무엇보다 유기농업은 생산량이 낮아 최대 40억 명의 인류밖에 부양할 수 없다.”
●농산업이 고소득을 올리는 직업이 될 수 있을까.
“하하하. 한국만 놓고 얘기해 볼까. 한국의 농업은 규모가 작다. 농가소득도 평균 도시근로자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의 보조금을 빼면 더욱 낮아질 거다. 하지만 같은 농업분야에서 상위 20%, 즉 ‘선도농가’들은 도시근로자보다 훨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건 아주 희망적인 현상이다.”
●자식들이 농부가 되겠다면 찬성하겠나.
“딸이 둘 있는데 아직 어리다. 그중 한 명이라도 농부가 되면 정말 좋겠다. 농부는 상당히 부지런해야 하는 직업인데 잘 해내려나 모르겠다.”(웃음)
●어떻게 인재들을 농업분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사실, 농업에 필요한 노동력은 계속 줄어들 거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농업도 ‘화이트 칼라’ 직업과 비슷해지고 있다. 격한 육체노동이 줄어드는 거다. 결국 더 많은 인재들이 농업분야를 첨단산업으로 인식하고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식물을 ‘제조’하는 식물공장(Plant factory)이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의 교육 프로그램은 정말 인상적이다.”
●세계 각지의 농업현장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
“베트남과 브라질을 꼽고 싶다. 베트남은 지난 15~20년 사이 농업생산량이 엄청나게 향상됐다. 중요한 건 그 주역이 대형 농장이나 농업기업이 아니라는 거다. 작은 개별 농가들이 지방정부와 손잡고 시장을 개척하고 생산은 물론 부대 서비스의 질을 확 높인 결과다. 브라질의 ‘누(NU)커피’도 뿌듯한 사례다.”
누커피는 신젠타가 만든 커피 브랜드이자 프로젝트명이다. 10년 전 브라질 커피농가에 작물보호제를 제공하고 돈 대신 커피를 받으면서 물물교환식 거래를 한 게 시초가 됐다.
지금은 작물보호제를 이용하는 커피농가에 한해 커피 재배 프로그램을 나눠주고 고객들과 연결시켜 거래를 성사시키고 유통까지 맡아준다. 신젠타는 제품을 팔고, 농가는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하고, 고객들은 믿을 만한 커피를 제공받는다. 1석3조, ‘농업경제학(agronomy)’의 선순환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프로젝트 안 하나.
“벼가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벼의 수확을 앞당기거나, 냉해나 가뭄 등 열악한 환경에 잘 견디는 기술을 선보일 거다.”
신젠타는 농업기업의 미래전략으로 ‘통합작물 솔루션(ICS)’을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소규모 농가들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도와주고 그들이 필요한 제반 사항을 한꺼번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 기업의 조직도 이에 맞게 바꾸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올 들어 한국과 일본, 대만을 한 지역으로 통합했다. 브라질의 누커피처럼 ‘원스톱 서비스’를 펼쳐 농가도 살고 기업도 사는 방식을 국경을 넘어서까지 확대하려는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는데 농업기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석유는 없어도 살지만 먹을 게 없으면 죽는다. 정말 재미있고 특별한 분야다.”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1년에 아시아·태평양, 남미, 유럽과 아프리카, 북미 등 4개 지역을 최소한 한 번씩은 돈다. 그동안엔 미국과 유럽에 가는 횟수가 연간 3~4회로 가장 많았는데 점점 아시아 쪽 비중이 커지고 있다. 현장에 직접 가서 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개발한 씨앗이나 작물보호제로 농부들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걸 보면 가장 기쁘다.”
●존경하는 롤모델이 있나.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 박사다. 지난 60~70년대에 수억 명을 기아에서 해방시킨 농학자로, 7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2009년에 돌아가셨는데 한 번도 직접 못 만나본 게 한이다. 몇 주전에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 Foundation)’에 참여했다. 볼로그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자 매년 식량생산이나 품질향상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주는 상인데 아주 감동적인 행사다.”
j 칵테일 >> 국산 파프리카 씨앗은 신젠타에서
마이클 맥 회장은 이날 색색의 파프리카를 안고 뿌듯해 했다. 이 파프리카는 전북 김제에서 한국 농부들이 재배한 것. 하지만 씨앗은 모두 신젠타에서 수입했다. 특히 국내 농가들은 내년부터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 협약이 확대 적용됨에 따라 ‘씨앗 비용’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향후 10년간 부담해야 할 종자 로열티 규모가 79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민감한 이슈에 대해 맥 회장의 의견을 물었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신젠타 종자는.
“고소득 작물로 유명한 파프리카가 가장 대표적일 거다. 그 밖에도 고추, 참외 등이 인기가 좋다.”
●종자 비용이 농가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부담이 돼선 안 된다. 종자 가격은 통상 전체 농가 비용의 7~15%다. 하지만 품질개선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병충해에 강한 종자를 사용하면 수확량이 15~20% 늘어난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새롭게 개발된 옥수수 종자는 비싸지만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품질이 떨어지는 씨를 심고 나서 작물보호제(농약), 비료, 기계 등을 들여 관리하려면 돈이 훨씬 더 든다.”
●그런 말을 ‘강자의 논리’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나는 한국도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2021년까지 약 4000억원을 들여 종자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또 매년 농업분야 연구개발(R&D)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의지라면 충분히 종자 수출국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도의 기술력을 지닌 국가라면 시각을 바꿀 때가 됐다. 어떤 베테랑 농부가 이런 말을 하더라. ‘내 평생 가장 비싼 씨앗은 공짜 씨앗이었다’고.”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살면서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완수해 내는 거다. 사람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미술·음악이든, 농사든 분야는 상관없다. 내 경우엔 농업전문기업의 수장이니까 사람들이 수확기처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임무다. 그 임무를 성공시켰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신젠타(Syngenta)는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다국적 농업기업으로 종자와 작물보호제(농약) 등을 판매한다. 2000년 노바티스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사업부가 합병해 세워졌는데, 한국의 서울종묘는 외환위기 당시 노바티스에 인수된 뒤 신젠타로 흡수됐다. 전 세계 92개국에서 2만6000명의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지난해 매출 116억 달러(약 13조원)를 올려 농약부문 세계 1위, 종자부문 세계 3위 규모다. 사명은 ‘통합’을 뜻하는 그리스어 ‘신(syn)’과 인류 개개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젠타(genta)’를 합친 말로 ‘우리 모두 다 함께 더 높은 곳을 향하여’란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