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부족이 인류의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식량주권’을 담보할 새로운 무역질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주 한 심포지엄에서 프랑스의 식량전문가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수입국의 보호장벽만 규제하고 수출국의 수출제한은 방치, 국제 곡물 수급 불안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면서 WTO 규제 재조정 필요성을 지적했다. 사실 WTO 체제는 모든 무역장벽을 허물어 상품과 서비스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하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농산물시장이 개방되고 식량안보 역시 무역을 통해 보장 받을 수 있는 양 호도됐다.
하지만 2007년과 2008년 국제 곡물파동은 무역을 통한 식량안보가 ‘허구’였다는 것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농산물 수출국이 곡물 수출을 중단해도, 수입국에서 식량폭동이 빈발해도 WTO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올해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소요와 폭동의 도화선도 식량이다. 연간 밀 수입량이 600만t에 달하는 세계 최대 밀 수입국 이집트는 밀값 폭등으로 엥겔계수가 60에 달하면서 ‘빵’ 부족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동으로 분출됐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 8억명이 절대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과연 세계화가 이들의 배고픔을 달래 주고 그 고통을 경감해 주었는지 이제 WTO가 답을 할 때가 됐다.
거대 중국만 하더라도 세계 식량의 4분의 1인 연간 5억t을 소비한다. 만일 중국의 식량자급률이 10% 떨어진다면 5,000만t을 수입해야 하고, 20%가 낮아지면 세계 식량 교역물량의 3분의 1인 1억t을 사들여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불문가지다. 그런 만큼 식량주권을 위한 각국의 조치가 보호되고 권장되는 새로운 무역질서의 출범은 필연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빵을 위한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